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

(61)
(도서) 별을 스치는 바람(이정명) - 아름다운 활자 동주여 테라피스트에 이어 두 번째 도서 감상문. 윤동주 시인이 실제 후쿠오카 형무소에 투옥되고 이후 사망하게 된 과정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살을 덧대어 이야기한다. 누구보다 글을 사랑했고 순수했으며 스스로를 부끄러워했던 소박하지만 위대했던 시인. 그는 왜 그리도 글을 사랑했을까. 쓰레기보다 더 한 일제의 인체실험으로 죄 없는, 나라를 사랑하는 이들이 가을 낙엽처럼 떨어졌다.   글은 우리를 변화시킨다. '무'의 상태일 때 우리는 그 대상을 그리워하고 더 떠올리고자 노력한다. "윤동주! 일어나라!"  우리는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부끄러워할 줄 아는 자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자만이 앞을 내다볼 혜안을 얻고 진정한 꿈을 꿀 수 있는 것은 또 아닐까. 해방 여섯 달 전, 29세에 하늘의 별이 되어 떠난 그..
(1989) 영광의 깃발 (Glory) - 리더의 정의는 시대의 흐름과 무관하다 미성숙한 단계에서 지는 책임은 언제나 영글지 못한 미생의 단계를 거친다. 대배우들의 젊디 젊은 시절을 보는 것이 즐거우나, 안드레 브라우퍼의 사망 소식을 알게 되어 슬픈 마음도 동시에 찾아왔다. 젊고 총명한 재능이 한창 빛나던 때.   실제 와그너 요새 함락 전투는 실패로 돌아가며 비극적인 결말을 맞지만, 이들은 서로가 하나 되어 불투명한 결과를 위해 끝까지 목숨을 바치며 싸웠다. 미국 남북 전쟁을 다룬 오래된 영화이지만 어떠한 리더가 팀을 이끌 수 있는지는 시대의 흐름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울 수 있다. 안타깝게도 젊은 영혼들이 승자가 없는 전투에서 희생되었으나, 그 희생은 그들의 이야기를 타고 세월이라는 거친 바다를 건너 지금의 우리에게까지 울림을 선사한다.    젊은 시절의 ..
(2024) 파묘 (Exhuma) - 직렬 방식으로 연결하는 빠꾸없는 연출 새로운 시도와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 그리고 실제 있었던 쇠말뚝 이슈들을 한 줄로 이어 전혀 재는 것 없이 일자로 끝까지 나아간다. 물론 쇠말뚝 사건의 경우에는 일제의 토지 조사사업 과정에서의 토지 측량과 관련되었고, 한국의 정기를 끊어내려 했다는 것은 계속 전해 내려오던 얘기를 영화적 상상을 더해 연출했지만.    분명 중반부 이후로 초반에 비해 아쉬운 점도 있었고 어느 정도는 유지해지는 요소도 더러 있었지만 무당들의 대화신과 더불어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있어 흡입력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배우들의 연기력은 더 바랄 것 없이 좋았으며, 특히 그동안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고 생각했던 김고은의 연기도 상당히 역할에 잘 녹아들어 영화에 집중하는데 전혀 부담감을 주지 않았다.   일제강점기의 아픔과 한을 민족..
(2012) 문라이즈 킹덤 (Moonrise Kingdom) - 사랑은 다 같은 모습이야 언제나 독특한 자신만의 연출과 색채, 그리고 분위기로 시청자들을 사로잡는 웨스 앤더슨의 앤더슨식 영화. 모든 장면이 말 그대로 예쁘고 어디 하나 신경 쓰지 않은 부분이 없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특유의 색감과 연출이 언제나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두 사람의 사랑, 특히 불안한 상황에 던져진 두 아이의 사랑은 어른들에게도 전하고 싶은 편지를 그림으로 보여주는듯하다. 모든 장면과 음악이 항상 잘 짜인 무대 연출 같은 분위기를 주는데, 여기에는 내레이터가 한 번씩 극을 설명해 주는 (이 역시 웨스 앤더스의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부분) 연출도 당연히 한몫을 한다.   어른들을 향한 아주 아름다운 동화 같은 귀엽고 말 그대로 깜찍한 영화. 슈퍼스타들의 출연도 영화를 온전히 맛보는 맛있는 반찬 같달까. 간..
(도서) 더 테라피스트 (The Therapist) - 끝없는 의심을 심다 첫 도서 감상문. 책을 좋아하는 나보다 더 이성적인 동생과 영화를 선호하는 조금은 더 감성적인 면을 선호하는 나. 얼마나 멋진 하모니인가. 동생 덕에 읽게 된 심리 스릴러 소설. 인물들의 긴장감을 이어가는 세밀한 심리 묘사가 끝까지 텐션의 장력을 이어가게 하는 것이 가장 큰 무기. 앞으로는 영화도 영화지만 책을 조금 더 관심 있게 들여다보게 될 수도.  추리 또는 심리 소설의 경우, 조금의 빈틈만 보여도 독자로 하여금 큰 아쉬움을 안겨주는 법이나, [더 테라피스트]는 끝까지 의심하고 또 의심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주제를 최대한으로 이행하지 않았나 싶다.  번역 역시 좋았고 영국, 특히 런던을 배경으로 내가 아는 지명들이 나와 스토리 외적으로도 더욱 몰입을 하게 해 읽는 맛이 가득했다.   결말이 아쉽다는 ..
(2017) 레이디 버드 (Lady Bird) - 우린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이제는 영화감독으로 더 유명해 현시점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는 감독 중 하나인 그레타 거윅의 2017년 영화.  모든 장면이 예쁘고, 한 말괄량이 소녀가 다양한 에피소드를 거쳐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가족의 사랑은 그 중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친구는 그 성장의 맛있는 양념이 된다. 소녀의 사랑은 떨쳐내려 해도 새크라멘토에 자리하며 그녀의 머리색만큼이나 다채로운 매력으로 자라난다. 시얼샤 로넌의 연기 하나하나와 영상이 유유히 흘러가는 모습들, 그리고 그녀가 겪는 일련의 에피소드들이 말 그대로 참 예쁘다.   우리는 어떻게 소년기를 지나 어른이 되어가는가.   레이디 버드의 눈가에 짙게 흘러내린 마스카라 자국만큼이나 알 수 없는 방향으로 인생은 자국을 남긴다. 그래도 시작점은 나라는 사람을 ..
(2021) 브리티시 오픈의 유령 (The Phantom of the Open) - 이 정도 꿈은 꿔야지! 참 따뜻한 영화. 실화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모리스 플릿크로프트라는 꿈을 잃지 않고 어쩌면 황당해 보일 수 있는 도전(정식 프로 골퍼도 아니면서 브리티시 오픈이라는 큰 대회에 출전하는)에 나서는 괴짜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다소 멍청해 보이는 이 도전이 어떤 행복한 결말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 모든 도전은 아름답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데, 실화를 바탕으로 해서인지 황당하면서도 동시에 존경스러운 마음까지 들게 만든다. 필자는 골프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그의 유쾌한 언변과 복장, 그리고 가족 간의 따뜻한 사랑까지 이 영화를 즐길 만한 요소는 충분히 많다.    모리스처럼 꿈꾸는 삶이 멋지게 보이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그렇게 살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마크 라이런스 연기도 언제나처럼 훌륭하지만 이..
(2023) 오펜하이머 (Oppenheimer) - 세상의 파괴자가 된 프로메테우스 크리스토퍼 놀런의 새로운 시도와 더불어 세계 2차대전 전세를 바꾸는 동시에 세상의 파괴자가 되어버린 천재의 전기 영화. 엄밀히 말하면 어릴 적 시절부터는 아니고 일련의 에피소드와 특정 시점을 기반으로 그의 다사다난했던 인생을 보여준다.  실제 인물들, 그것도 세기의 명사들이 줄지어 등장하며, 거론되는 인물들만 하더라도 가히 어마어마한 수준. 아무래도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이벤트 중 하나였기 때문에 더욱이 그럴 수밖에.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 그의 뛰어난 두뇌와 리더십을 통한 맨해튼 프로젝트가 성공을 이루자마자, 그 사용에 대한 권한은 그의 손을 떠나가며, 그때부터 인생의 비극은 시대와 맞물려 시작된다. 과학적 연구와 실제 사용으로 인한 괴리에서, 그리고 시대의 무서움을 따라 ..